자기 개발

다 큰 어른이지만, 아직 상처받는다

Project2050 2025. 4. 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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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커서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감정은 계산되고, 인간관계는 명료해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른이다.
계약서도 읽을 줄 알고, 세금도 내고,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상사이거나, 혹은 사회인이다.
그런데 여전히, 너무도 쉽게 상처받는다.

어제는 동료의 무심한 말 한 마디가 내 하루를 무너뜨렸다.
며칠 전에는 가족에게 서운한 소리를 듣고 밤새 뒤척였다.
댓글 하나에, 톡 하나에,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한 듯 울컥했던 날도 있다.

“왜 아직도 이래?”
“왜 이렇게 유리멘탈이야?”
내가 나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감정은, 훈련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수 있지, 그냥 넘겨.”
“신경 쓰지 마, 그 사람 원래 그래.”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 건,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내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너질 이유가 없는 줄 알면서도 무너진다.
나를 향한 비난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상처받는다.
이성은 이미 현실을 납득했는데,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울고 있다.


감정은 약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버티는 법을 배운다.
참는 법을 익힌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어쩌면 상처받는다는 건 아직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누군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약한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마음이라는 증거다.


‘회복탄력성’은 상처받지 않는 힘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넘긴다.
그게 강함일까?
아니다.

진짜 회복탄력성은,
상처를 피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인정하고 다루는 힘’이다.

“나는 지금 서운하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여전히 그게 신경 쓰인다.”

이런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무조건 참는 건 탄력성이 아니라, 감정의 억압일 뿐이다.


“이 나이 먹고도 아직 이렇다니”라는 말은 틀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다.
“이 나이 먹고도…”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얼마나 자주 꺼내는가.

하지만 나이는 감정을 초월하는 기준이 아니다.
경력 10년 차라고 감정노동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30대라고 사랑에 초연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복잡해진다.
상처는 겹쳐지고, 표현은 어려워지고, 울 공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더 쉽게 지치고, 더 깊게 흔들린다.


내 감정에 내 편이 되어주기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에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다.

  • “그 상황이면 누구라도 속상했을 거야.”
  • “나는 잘 버티고 있고, 괜찮아질 거야.”
  • “다시 웃을 날이 곧 올 거야.”

이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어른이 되었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대신, 그 말에 깊이를 갖춘 어른이 된다.


마무리하며

어른이라서 상처받지 않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내는 게 어른이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면,
그건 당신이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 상처받고 있는 당신에게 이 말을 건넨다.

“괜찮아.
지금 아픈 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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