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

스위치를 쥔 일론 머스크: 스타링크 속도 제한 열흘이 보여준 것

Project2050 2026. 10. 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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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밤, 드론이 눈을 잃었다

시작은 조용했습니다. 10월 13일 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드론 조종사들의 화면이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세르히 베스크레스트노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기술고문이 텔레그램에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전날 밤 스페이스X가 이동 중인 군용 단말기, 그러니까 '스타실드'의 작동 속도를 시속 100마일(약 160km)로 제한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사전 통보는 없었습니다.

시속 160km라는 숫자가 왜 치명적인지 이해하려면 우크라이나군이 스타링크를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합니다. 점령지 안 러시아 진지를 때리는 장거리 공격 드론, 보급품을 나르는 병참 드론, 그리고 제트엔진을 단 러시아 샤헤드 드론을 쫓아가 잡는 요격 드론. 이들은 모두 위성 통신으로 실시간 영상을 받아 조종됩니다. 그런데 일정 비행 속도를 넘으면 통신이 끊기거나 급격히 느려지니, 조종사는 화면을 잃고 작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베스크레스트노우 고문의 말대로 샤헤드 요격 드론까지 마비되면서 방공망에도 구멍이 났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설정된 160km보다 낮은 속도에서도 통신이 끊겼다고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표현이 핵심을 찌릅니다. 스타링크가 꺼진 게 아니라 느려진 것이고, 느려지자 일정 수의 제트 샤헤드를 요격할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사람을 지키는 도구를 쓸 수 없게 된 셈입니다.

"나 아니다"가 열흘간 이어진 이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로 넘어갑니다. 누가 스위치를 눌렀느냐를 두고 열흘 동안 '네 탓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10월 14일 머스크가 먼저 선을 그었습니다. 스타실드 시스템은 미국 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하며, 속도와 사용에 대한 모든 제한은 미군 당국과 최종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며, 일론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은 어떤 것도 제한하지 않았다면서도, 서비스 약관이 있고 그 부분에서 스타링크가 결정을 내릴 선택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18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NBC에 나와 미국 정부가 지시하고 스페이스X가 기술적으로 시행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이 판을 뒤집었습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머스크가 직접 스타실드 속도 제한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겁니다. 한 소식통은 머스크가 제한을 걸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고위 인사들과 논의했다고 했고, 다른 당국자들은 머스크가 단독으로 행동했으며 트럼프가 보복을 지시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로이터는 속도 제한 지시가 백악관 내부에서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루비오 국무장관과 헤그세스 장관은 행정부 개입을 부인했지만, 밴스 부통령은 백악관과 머스크가 조율했을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백악관 내부에서는 비공식 조사까지 진행됐습니다.

배경에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고유가의 원인으로 지목해 왔고, 트럼프와 머스크는 나란히 젤렌스키를 비판해 왔습니다. 머스크는 젤렌스키가 선을 넘었다고 썼고, 스타링크를 끄면 우크라이나 전선이 즉시 무너질 것이라는 글도 올렸습니다.

24일, 머스크가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머스크에게 전화해 복구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23일까지도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제한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상을 통해 속도가 필요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밤사이 복구가 시작돼 아침에는 시속 400km 이상으로 이동 중에도 통신이 됐습니다. 흐마라 국방장관도 스타실드가 정상 작동한다고 확인했습니다.

같은 날 머스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민간 상업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사람을 죽이는 공격용 드론에 쓰는 것은 허용된 적이 없고 허용돼서도 안 되며, 우크라이나군이 서비스 약관을 위반했고 그 허점을 지난주에 막았다는 겁니다. 다만 스타실드는 여전히 미국 정부가 통제한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스페이스X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 정부 관할인 스타실드에는 아무런 변경도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페이스X가 지구상 어떤 민간기업보다 우크라이나 방어에 훨씬 많이 기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곧바로 반박했습니다. 베스크레스트노우 고문은 민간용 스타링크로 운용되는 드론은 우크라이나 안에서 시속 70~90km 제한이 걸려 있고 러시아 영토에서는 아예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업용 스타링크로는 장거리나 중거리 타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머스크가 자국 서비스의 제한 설정을 모른다는 게 매우 이상하다는 말도 보탰습니다. 전직 국방장관 고문 세르히 스테르넨코 역시 스타링크를 드론 미사일에 쓰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한된 것은 군용 스타실드인데, 머스크가 인정한 것은 민간 스타링크의 '허점 차단'입니다. 둘이 같은 위성을 쓰지만 다른 서비스라는 점이 이 공방의 핵심 틈새입니다. 무엇이 정확히 막혔고 약관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장면은 기시감이 있습니다. 2022년 9월, 우크라이나가 세바스토폴 만의 러시아 함정을 해상 드론으로 공격하려 했을 때 목표 70km 앞에서 스타링크 통신이 끊겼습니다. 머스크가 통신을 차단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페도로프 부총리의 설득도 워싱턴의 압박도 통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사기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023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외교정책이 정부가 아니라 한 억만장자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지 조사하자고 요구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이 스페이스X가 올여름 상장한 뒤 처음 벌어진 일이라는 점입니다. 상장사의 CEO가 전쟁 당사국의 통신망을 조절했다는 사실은 주주와 의회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공화당 틸리스 상원의원은 스페이스X의 정책을 묻는 글을 올렸고, 민주당 의원들은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켜고 끄는 권력

더 큰 그림은 로이터가 25일 보도했습니다. 전직 미 정부 고위 당국자 6명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외교정책 목표를 위해 스페이스X의 위성망 통제권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의존해 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때는 후티 반군과 헤즈볼라가 우회 입수한 단말기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고, 반대로 2022년 이란 반정부 시위대와 우크라이나군을 위해서는 망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켜는 것도, 끄는 것도 요청해 온 겁니다.

그래서 동맹국들이 움직입니다. 유럽 당국자들은 머스크 통제하의 미국산 위성 인프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럽 자체 군사 위성망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의 카니 총리는 캐나다인들도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단일 공급자에 의존하는 상황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잠재적 공격에 대비해 통신망 복원력과 드론 활용을 늘리려는 대만에 이번 사태가 중요한 경고가 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젤렌스키의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

결국 남는 질문

전쟁의 통신선이 한 기업, 더 좁히면 한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새로 밝혀진 게 아니라 다시 확인된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스페이스X를 통해 머스크가 행사하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부각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머스크 입장에서 보면 자사 약관을 집행한 것이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보면 방공망에 구멍이 난 것이며,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누가 결정했는지조차 설명이 엇갈리는 열흘이었습니다.

위성은 하늘에 떠 있지만 스위치는 땅에 있습니다. 그 스위치가 어느 책상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책상의 주인이 바뀔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우크라이나가 열흘 동안 치른 수업료로 유럽과 캐나다, 대만이 배운 교훈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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