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상반기, 국내 대표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직면한 공통적인 어려움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공장 가동률 하락이다. 세 회사 모두 한때 80%를 넘나들던 가동률이 절반 수준에 머무르면서, 고정비 부담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위기 속에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리며 기술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1. 가동률 하락의 현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상반기 평균 가동률이 51.3%에 그쳤다. 2023년 69.3%, 2024년 57.8%에서 지속 하락한 수치다. 삼성SDI 역시 소형 전지 부문 가동률이 전년 58%에서 44%로 급락했다. 중대형 전지는 공식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온은 전년 43.6%에서 올해 상반기 52.2%로 반등했으나, 여전히 2023년의 87.7%와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가동률 하락은 생산 효율 저하뿐 아니라, 단위당 제조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배터리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와 인건비, 소재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가동률이 낮아지면 손익분기점 달성이 어려워진다.
2. 재무 부담 확대
가동률 하락과 동시에 재무 부담도 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총차입금은 20조8천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5조4천억 원 늘었고, SK온은 16조7천억 원으로 1조1천억 원 증가했다. 반면 삼성SDI는 160억 원 줄어든 11조4천억 원으로, 상대적으로 재무 관리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삼성SDI 역시 가동률 하락과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장기적인 재무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차입금 증가는 이자 비용 부담을 높이고, 현금흐름에 압박을 가한다. 특히 배터리 산업은 대규모 증설과 신기술 개발을 위한 선행 투자 비중이 높아, 경기 불황 시 차입금 상환 능력이 중요해진다.
3. R&D 투자의 지속과 확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세 회사 모두 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상반기에 6,204억 원을 집행했으며 매출 대비 비중은 5.2%에 달했다. 삼성SDI는 7,044억 원을 투자해 매출 대비 11.1%를 기록, 세 회사 중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전년 7.8%에서 크게 늘린 것이다. SK온은 1,480억 원을 투자해 비중이 0.52%로 낮았지만,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R&D 투자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고에너지밀도, 장수명, 안전성, 가격 경쟁력이라는 네 가지 요건이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에 기술 선점이 곧 시장 점유율로 이어진다.
4. 시장 환경과 향후 회복 시점
전기차 수요 둔화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고금리 환경, 전기차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부족, 그리고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수요 성장세가 꺾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25년 하반기를 저점으로, 2026년 상반기부터 수요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회복 국면에 대비해, LG에너지솔루션은 ESS(에너지저장장치) 분야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에서 LFP 기반 대형 ESS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17GWh 규모의 생산 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폴란드 공장을 활용해 LFP와 중·저니켈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46 시리즈’ 양산에 착수했으며, 이를 모듈화해 북미 주요 완성차 업체에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GM과 합작으로 미국 인디애나에 연간 30GWh 이상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SK온은 북미 OEM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기반으로, 신규 생산라인 효율화와 품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5. 산업적 시사점
- 가동률 하락은 구조적 전환 신호: 단기적인 수요 둔화가 아니라, 글로벌 EV 시장의 성장 패턴이 완만해지고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 기술 투자 없이는 생존 불가: 원가 경쟁력만으로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소재 혁신, 제조 공정 효율화, 차세대 배터리 개발이 필수다.
- ESS 시장이 새로운 돌파구: 전기차 수요 변동성을 상쇄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맞물려 ESS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중요성 확대: 관세, 보조금, 물류비 등을 고려할 때 현지 생산 거점 확보가 시장 점유율 유지의 핵심이다.
6. 전망
2025년 하반기는 여전히 도전적인 시기지만, 각 사의 전략이 결실을 맺는 시점은 2026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중심의 포트폴리오 다각화, 삼성SDI는 프리미엄 배터리 기술 강화, SK온은 효율 극대화와 원가 절감 전략을 통해 회복을 노릴 것이다.
다만 회복 국면에서도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면 R&D 투자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또한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과 가격 전략, 원자재 가격 변동성 등 외부 리스크에 대한 대응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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