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티브 미란(Stephen Miran)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의 새 이사로 지명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 조치가 아니라, 향후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다시금 드러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과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트럼프가 왜 미란을 선택했는지, 그 배경과 현재 상황, 그리고 향후 미국 및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트럼프의 연준 압박과 ‘파월 비판’
트럼프와 연준의 관계는 오랜 기간 불편했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제롬 파월 의장을 “멍청이(numbskull)”라고 지칭하며 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 트럼프의 경제 기조는 성장률 부양과 제조업 경쟁력 회복에 맞춰져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낮은 금리와 약한 달러가 필요하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융 안정성을 중시하며 금리 동결과 점진적 완화를 고수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트럼프는 결국 자신의 경제 철학을 충실히 반영할 인물을 연준 이사회에 앉히기로 결정했다. 미란은 그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다.
2. 스티브 미란, 누구인가?
스티브 미란은 전형적인 ‘학계 엘리트’가 아니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학문적 업적보다는 자산운용사에서 투자전략가로 활동한 이력이 주를 이룬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발표한 ‘미란 보고서’는 그를 트럼프 진영의 핵심 책사로 부상시켰다.
보고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 안보와 경제 공공재를 제공했으나, 타국들이 이를 악용해 불공정 무역과 환율 조작을 해왔다.
- 고평가된 달러와 무역적자가 미국 제조업을 황폐화시켰다.
- 따라서 달러 약세와 환율 조정,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켜야 한다.
이 내용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환율 개입론, 미국 우선주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시 말해, 미란은 트럼프의 경제적 세계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정치적 경제학자’라 할 수 있다.
3. 왜 파월의 후임으로 미란인가?
트럼프가 미란을 지명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 정책적 충성도
미란은 트럼프의 경제 기조—저금리, 달러 약세, 제조업 지원—에 철저히 부합한다. 파월이 보여준 독립성과 신중론과 달리, 미란은 ‘친트럼프’ 정책을 밀어붙일 준비가 돼 있다. - 비(非)전통적 배경
대부분의 연준 이사들이 학계 출신인 반면, 미란은 시장 경험을 쌓아온 실무형 인물이다. 트럼프는 기존 엘리트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불신을 갖고 있었기에, 시장 중심적 접근을 하는 인사를 선호했다. - 정치적 효과
2024년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는 금융·경제 정책에서 자신의 흔적을 강하게 남기길 원한다. 파월 같은 독립적 인사가 아닌, 정책적 일체감을 공유하는 미란을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4. 미란의 정책 기조: 달러 약세 + 금융 완화
미란의 철학은 달러를 약하게, 금리를 낮게로 요약된다.
- 달러 약세: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전략. 이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은 일본, 서독 등과 합의해 달러 가치를 낮추고 무역 불균형을 조정했다.
- 금리 인하: 제조업 투자와 내수 소비를 자극해 경제를 부양하려는 의도.
그러나 이 두 가지 목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팔아야 하는데, 이는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즉, 달러 약세와 국채 금리 안정은 모순적 조합이다.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연준의 양적완화(QE)다. 연준이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억제하면서도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후 연준이 이미 사용했던 수단이기에, 현실적 가능성이 크다.
5. 현재 시장의 반응
미란 지명 이후 월가는 “연준이 본격적으로 트럼프 정책의 연장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 미국 주식시장: 저금리·약달러 기조는 주식시장에 우호적이다. 대형 제조업 및 수출기업 주가가 반등할 수 있다.
- 채권시장: 국채 매입 확대가 예상되면서 금리 급등 리스크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국가부채 부담을 키울 수 있다.
- 외환시장: 달러 약세 전망이 커지면서 유로화, 엔화, 위안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신흥국 통화에는 단기적 호재가 될 수 있다.
6. 국제사회와의 마찰 가능성
달러 약세 정책은 필연적으로 무역 파트너와의 갈등을 불러온다.
- 중국: 이미 미중 갈등은 무역, 반도체, 안보 전방위로 확산된 상황이다. 미국이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면 중국도 위안화 절하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 유럽·일본: 플라자 합의처럼 미국이 동맹국에 환율 조정을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과 일본은 이미 낮은 금리·완화 정책을 쓰고 있어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 신흥국: 달러 약세는 단기적으로 자본 유입을 유도할 수 있지만, 글로벌 환율 불안이 커지면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된다.
7. 향후 전망: 미국 내외의 파급 효과
- 미국 내
- 제조업과 고용이 일정 부분 개선될 수 있다.
- 그러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원자재·에너지 가격이 달러 약세로 오르면 물가가 자극될 수 있다.
-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커질 수 있다.
- 국제사회
- 달러 가치 하락은 기축통화 체제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외환보유고 다변화를 가속할 수 있다.
- 글로벌 금융시장은 달러 약세·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리스크 온(risk-on)’ 분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 다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부채 부담이 폭발하면 또 다른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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