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1일 오전, 이란 국영방송 앵커가 눈물을 흘리며 방송을 진행했다.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순교했습니다." 단 몇 초의 발표였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37년. 그것이 하메네이가 이란을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이 2월 28일 아침, 테헤란의 하늘에서 내리꽂힌 폭탄 30발과 함께 끝이 났다.
이란은 전 세계에 40일간의 추도 기간과 7일간의 국가 셧다운을 선포했다.
그러나 세상은 슬픔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으로 가득 찼다. 하메네이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란 군·안보 수뇌부 다수의 사망 명단을 공개했다. 이란의 권력 피라미드가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이제 세상은 묻는다. 다음은 누구인가.
37년간 신의 대리인이었던 남자, 하메네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그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다. 이란 헌법은 그를 "신의 대리인"으로 규정했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위에 존재하는 자였다. 대통령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었고, 군 총사령관이자 최고 법관이기도 했다. 어떤 법안도 그의 승인 없이는 집행될 수 없었다. 이란에서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회가 어떤 법을 만들든, 그 위에 하메네이가 있었다.
1939년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부터 쿠란을 익히며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루홀라 호메이니의 최측근으로 팔라비 왕조에 맞서 여러 차례 투옥됐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성공 이후 요직을 거쳤다.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후계자로 낙점돼 제2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 이후 37년. 하메네이는 이란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반서방 저항의 축으로 만들었다.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등 이른바 "저항의 축" 세력들을 지원하며 중동 전역에 이란의 그림자를 뻗쳤다. 핵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세계 각국의 독재자 명단에 반드시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인물 중 하나"라고 불렀다. 이란 국민 중 일부는 그의 사망 소식에 눈물을 흘렸지만, 또 다른 일부는 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가 수개월 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외쳤던 구호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었다.
폭탄 30발이 날아든 관저, 그리고 확인된 시신
2월 28일 아침, 이스라엘군은 하메네이의 테헤란 관저에 30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지하에 있던 하메네이는 이를 버텨내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 고위 인사를 인용해 하메네이의 사망을 보도했다.
처음에는 혼선이 있었다. 이란 현지 매체들은 "적의 심리전"이라며 사망설을 즉각 부인했다. 이란 국내에서도 혼선이 이어졌다. 하메네이의 사위와 며느리가 사망했다는 이란 측 내부 발언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그가 여전히 집무실에서 전장을 지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단언했다. "오늘 아침 강력한 기습 공격으로 테헤란 중심부에 위치한 하메네이의 거처가 파괴됐다. 더 이상 폭군이 살아있지 않다는 여러 징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스라엘군이 촬영한 하메네이의 시신 사진을 봤다고 직접 언급했다.
결국 이란은 스스로 인정했다. 이란 국영통신 IRNA와 국영방송 프레스TV가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순교했다"고 보도했으며,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추도 기간과 7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소식을 전하던 국영방송 앵커는 방송 도중 눈물을 흘렸다.
함께 사라진 이란 권력의 핵심들
하메네이 혼자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 직후 이란 고위 지도부의 사망자 명단을 공개했다. 폭스뉴스는 미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 수뇌부 5~1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확인된 주요 인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확인된 인물은 모하마드 파크푸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이다.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정규군과 별도로 존재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핵심 무력 집단이다. 15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하며, 이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핵 프로그램 관리, 해외 무장 세력 지원, 반정부 시위 진압 등 이란의 모든 강압적 정책의 실행 주체였다. 파크푸르는 2025년 6월 이스라엘군과의 충돌 당시 사망한 호세인 살라미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된 인물이었다. 그가 임명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공습으로 숨진 것이다. 성향은 강경 보수파였으며,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두 번째 사망자는 아지즈 나시르자데 이란 국방장관이다. 그는 이란 방공 체계와 군사 전략을 총괄하던 인물로, 핵 개발 계획의 군사적 보호막 역할을 맡아왔다. 공군 출신 군인으로, 군 엘리트 중에서도 혁명수비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던 강경파였다. 국방장관의 사망은 이란 군사 지휘 체계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알리 샴카니 이란 국가안보위원회 수장이다. 국가안보위원회는 이란의 내외 안보 전략 전체를 조율하는 핵심 기관이다. 샴카니는 이 기관의 수장으로서 핵 협상 전략, 미국·이스라엘 대응 전략, 해외 무장 세력 지원 정책 등 이란 안보의 핵심을 쥐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망은 이란의 대외 전략 수립 능력에 심각한 공백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정보 당국 인사 살레 아사디, 핵 및 군사 연구 책임자 호세인 자발 아멜리안, 레자 모자파리니아, 그리고 오랜 기간 국방 연락관을 맡아온 모하마드 시라지도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다. 이란 역사상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최고위급 인사가 동시에 사라진 사례는 없었다.
하메네이의 사위와 며느리도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와 그의 직계 가족, 그리고 군·안보 수뇌부 전체가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란 헌법 제111조: 누가 권력을 잡는가
하메네이가 사망했다고 해서 권력이 자동으로 대통령에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란의 권력 승계는 복잡한 헌법적 절차를 따른다.
이란 헌법 제111조는 최고지도자 유고 시의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우선 대통령, 대법원장, 헌법수호위원회 소속 고위 성직자인 이슬람 율법학자 등 3명으로 구성되는 비상위원회가 임시로 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후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전문가회의)가 정식 최고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전문가회의는 88명의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되며, 통상적으로 후계자 선출에는 몇 달이 걸린다. 그러나 하메네이는 생전에 공습으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후계자 후보 3명을 이미 전문가회의에 전달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하고 질서 있는 승계를 원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이란이 전쟁 중이라는 점이다.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문가회의가 88명의 성직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정식 선거를 진행할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하다.
권력 대행의 1순위: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현재 이란의 공식 2인자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다. 심장외과 의사 출신인 그는 2024년 선거에서 이란 역사상 처음으로 개혁 성향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쿠르드·아제르바이잔계 혼혈이며, 이란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내부 시위에 대한 무조건적 강경 진압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려 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혁명수비대 강경파로부터는 미움을 받아왔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암살 대상으로 지목했으나, 이란 타스님 뉴스통신은 그가 무사하다고 보도했다.
헌법상 비상위원회의 일원으로서 그는 가장 먼저 과도기적 최고지도자 역할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개혁 성향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핵심 권력층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란 정치권 일각에서는 페제시키안이 이란의 체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니면 혁명수비대 강경파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실질적 권력 계승자로 주목받는 알리 라리자니
법적 절차 밖에서, 실질적 권력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꼽히는 사람은 알리 라리자니 이란 국가안보최고회의(SNSC) 사무총장이다.
라리자니는 테헤란대 철학 교수 출신으로, 독일 철학자 칸트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이 있는 이례적인 인물이다. 4개 부처에서 장관직을 지냈고, 혁명수비대 지휘관, 2015년 핵 합의 당시 협상 대표로도 활약했다. 하메네이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러시아·중국·페르시아만 왕정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하메네이의 대리인 역할을 사실상 도맡아 왔다.
하메네이는 생전에 자신의 유고 시 신정체제를 관리할 최우선 적임자로 라리자니를 지목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나 주변국들도 라리자니를 포스트 하메네이 체제에서 대화가 가능한 현실적인 상대로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한때 서방에서 실용적 보수파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라리자니는 하메네이 사망 직후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온건론자로서의 모습보다는 강경파의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2025년 말~2026년 초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을 때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한 유혈 진압을 밀어붙인 것도 라리자니로 알려져 있다.
결정적 제약도 있다. 이란 헌법은 최고지도자가 반드시 아야톨라(시아파 고위 성직자)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라리자니는 성직자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공식적인 제3대 최고지도자가 되기에 법적 결격 사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최고지도자 직위 자체를 승계하기보다는 과도기적 통치 기구의 실질적 운영자, 혹은 대외 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공식 후계자의 조건: 아야톨라여야 한다
이란 헌법이 최고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아야톨라 지위다. 아야톨라는 시아파 이슬람 최고 성직자 칭호로, 수십 년간의 신학 공부와 이슬람 법학 연구를 통해 취득하는 종교적 권위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후계자 후보로 거론돼온 인물들이 있다. 가장 먼저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56)다. 그는 이란 정치 의사결정권 내에서 영향력 있는 중간급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혁명수비대 및 종교·정치 인사들과 견고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하메네이는 생전에 아들에게 직접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피하려 했고, 모즈타바는 후계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거론 인물은 하산 호메이니(53)다. 이슬람 공화국의 창시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로, "혁명의 성혈(聖血)"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그는 보수 원칙파가 주류인 현 이란 체제와는 달리 개혁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 회의 선거 후보 신청 자체가 이유 없이 기각된 바도 있어, 그가 최고지도자가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다.
원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됐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은 2024년 헬기 추락 사고로 이미 사망했다. 이란 신정 체제는 라이시 사망 이후부터 이미 뚜렷한 후계 구도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혁명수비대: 이 싸움의 진짜 변수
전문가들은 이란의 권력 공백 이후 가장 큰 변수로 혁명수비대의 동향을 꼽는다.
혁명수비대는 단순한 군대가 아니다. 이란 경제의 30~40%를 장악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정보망과 무기 체계, 사법 집행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란이 지금까지 외부의 압박을 버텨온 것은 혁명수비대의 결집력 덕분이었다. 이들은 최고지도자가 누가 되든 실질적 권력의 핵심에 있다.
만약 혁명수비대가 단일 대오를 유지한다면, 기존 체제의 지도부 인물들이 사망하더라도 현행 권력구조가 대체로 유지될 수 있다. 반면 혁명수비대 내에서 파벌 간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면, 완전히 다른 정치적 경로가 열릴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폭스뉴스는 "혁명수비대가 단결을 유지하느냐, 내부 파벌 다툼으로 분열하느냐가 이란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전했다.
이란 국민의 엇갈린 눈물
하메네이의 사망에 이란 국내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국영방송 앵커는 눈물을 흘리며 애도를 표했고, 충성스러운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슬픔을 표현했다. 반면 일부 이란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거리에서 어떤 이는 "마침내 해방됐다"고 외쳤다. 수개월간 죽음을 무릅쓰고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이란 국민들에게 하메네이는 탄압의 상징이었다. 2025년 말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이란 당국이 얼마나 많은 시민을 학살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트럼프가 언급한 3만 2천 명에서, 이란 인권 단체들이 추정한 2만 5천 명까지 엄청난 숫자가 오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국민을 향해 외쳤다. "지금이 자유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일을 마치면 정부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강경 지도자가 하메네이의 자리를 채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47년간 이어져온 이란 신정 체제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메네이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체제, 그가 구축한 권력망, 그가 키운 혁명수비대는 아직 건재하다. 이란의 미래는 이 세 가지 유산과 싸우는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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