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매출 21조, 적자 107조, 그래도 역대 최대 IPO: 앤트로픽 증권신고서를 읽는 법

Project2050 2026. 10. 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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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503쪽짜리 서류 한 장

10월 26일 월요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 전자공시 시스템에 서류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Anthropic, PBC’가 제출한 증권신고서(Form S-1)입니다. 생성형 AI '클로드'를 만든 회사가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 마켓에 ‘ANT’라는 종목코드로 상장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겁니다. 주요 AI 모델 개발사 가운데 첫 상장이고, 경쟁사 오픈AI보다 한발 앞선 행보입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지난달 안전 문제를 이유로 올해 IPO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신고서에는 공모 주식 수와 희망 공모가가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도 월가는 벌써 숫자를 꺼내 들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앤트로픽이 기업가치 최대 2조 달러(약 2,700조 원)를 평가받아 1,000억 달러(약 133조 원)를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6월 스페이스X가 세운 상장 기업가치 1조 7,700억 달러, 조달액 750억 달러를 모두 넘어서는 숫자입니다. 다만 로이터는 이달 투자자 설명회 이후 기업가치 눈높이가 2조 달러에서 1조 5,000억 달러 안팎으로 내려왔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5월 650억 달러를 유치할 때 평가받은 9,650억 달러와 비교하면, 다섯 달 만에 몸값이 1.5배에서 2배로 뛴 셈입니다.

일정은 빠릅니다. SEC 관행상 신고서 공개 15일 뒤부터 로드쇼를 열 수 있어 이르면 11월 10일 투자설명회가 시작되고, CNN은 이르면 11월 16일 거래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대표 주관사이고, 주관사단은 24곳에 이릅니다.

매출 14배, 그런데 적자 107조 원?

이 회사의 성적표는 두 줄로 요약됩니다. 올해 상반기 매출 162억 8,600만 달러(약 21조 6,000억 원), 1년 전 11억 6,300만 달러의 14배입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순손실 807억 4,800만 달러(약 107조 원). 매출의 다섯 배를 까먹었다는 뜻입니다. 숫자만 보면 "이런 회사를 2조 달러에 사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만합니다.

그런데 적자의 정체를 뜯어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807억 달러 가운데 약 724억 달러는 전환사채와 파생상품의 공정가치가 바뀌면서 생긴 장부상 손실입니다. 쉽게 말해 회사 몸값이 너무 빨리 올라서, 예전에 싸게 발행해 둔 전환사채의 가치가 그만큼 불어났고, 회계상 그 차이를 손실로 잡은 겁니다. 돈이 실제로 빠져나간 게 아니라, 잘나가서 생긴 손실입니다. 회사가 따로 제시한 조정 영업이익은 16억 1,800만 달러로 반기 기준 첫 흑자이고, 2분기에는 영업이익 9억 7,400만 달러를 내며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투자자 설명회에서 밝힌 3분기 매출은 168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45% 늘었습니다.

현금도 넉넉합니다. 6월 30일 기준 누적 조달액은 1,411억 달러, 보유 현금은 1,124억 달러에 단기 투자 193억 달러가 더 있습니다. 매출 구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상반기 매출의 80%인 131억 달러가 사용량 기반 매출이고, 약 48%는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어디에 쓰나: 컴퓨팅이라는 블랙홀

1,000억 달러를 왜 조달해야 하는지는 신고서의 '계약 의무' 항목에 답이 있습니다. CNBC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데이터센터, 그 안의 장비, 클라우드 서비스를 포함한 컴퓨팅 비용으로 약 4,170억 달러를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 2028년부터 2031년 사이 인도될 추가 컴퓨팅 용량을 주문해 뒀는데, 아직 가격이 확정되지 않은 이 계약만으로 1,250억~1,500억 달러가 더 붙을 전망입니다. 합치면 최소 5,420억 달러입니다.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와는 사용량과 관계없이 최소 2,694억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고, 스페이스X에는 약속된 용량이 모두 인도되면 엔비디아 GPU 기반 컴퓨팅 이용료로 매달 약 31억 달러를 지급하게 됩니다. 임대료 조달을 위해 최대 420억 달러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고, 아마존은 4월 계약에 따라 최대 200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쯤 되면 AI 회사가 아니라 전력회사나 철도회사 재무제표를 읽는 느낌입니다. 모건스탠리는 2025~2028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건설 비용을 약 2조 9,000억 달러로 추산하면서, 이 가운데 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현금흐름으로 충당할 몫은 1조 4,000억 달러 정도라고 봤습니다. 나머지는 누군가 빌리거나 주식을 팔아서 메워야 합니다. 앤트로픽 IPO가 “AI 산업의 수익성 시험대”라고 불리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반도체와 클라우드에 거액을 쏟아붓는 AI 개발사가 실제로 얼마나 버는지, 처음으로 분기마다 공개되는 겁니다.

투자설명서에 '인류의 재앙'을 적은 회사

이번 신고서에서 가장 화제가 된 대목은 숫자가 아닙니다. 위험 요인 설명에만 94쪽을 썼는데, 그 안에 고도화된 AI가 충분한 안전장치 없이 개발·배포될 경우 "인류에 재앙적이거나 실존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AI 모델이 작동 중단을 피하려고 스스로 정보를 은폐·조작하거나 '자기보존'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경고, 사이버 공격과 생물학 무기 악용, 권위주의 정권의 감시국가 구축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까지 적었습니다. 미국 국방부 등 정부와 벌이고 있는 법적 갈등도 사업 위험에 넣었고, 이 때문에 정부에 납품하는 기업들이 앤트로픽 AI를 쓰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보통 IPO 서류의 위험 요인은 "경쟁이 심합니다", "핵심 인력이 떠날 수 있습니다" 같은 상투적 문장으로 채워집니다. 자사 제품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쓰는 회사는 흔치 않습니다. 동시에 다리오 아모데이 CEO 등 창업자들은 서한에서 AI가 암·알츠하이머·희귀 유전질환 치료를 앞당기고 노동생산성과 경제성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서류에 천국과 지옥이 나란히 적혀 있는 셈입니다.

주식은 사도, 회사는 못 산다

지배구조도 독특합니다. 앤트로픽은 공익법인(Public Benefit Corporation, PBC)으로, 상장 후 이사회 과반을 선임할 권한은 독립 기구인 장기이익신탁(Long-Term Benefit Trust, LTBT)이 갖습니다. 나머지 이사 선임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주 안건에서는 공동창업자 7명이 소유한 법인에 발행되는 단 한 주의 클래스 F 주식이 의결권 50.1%를 행사합니다. 신고서는 이 때문에 앤트로픽이 나스닥 규정상 '지배회사'에 해당하며, 이 구조가 클래스 A 주주의 경영 참여 능력을 사실상 없앨 수 있다고 스스로 경고합니다. 주요 주주인 아마존과 구글의 지분에는 의결권이 없습니다. 창업자들은 지분의 8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경쟁사와 달리 클로드에 광고를 넣지 않겠다는 원칙도 재확인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은 받되 운전대는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무디스는 이번 신고서가 AI 산업의 가시성을 높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컴퓨팅 제약, 제한된 주주 영향력, 그리고 공익 사명과 재무적 수익 사이의 긴장을 투자자가 살펴야 할 지점으로 꼽았습니다.

11월, 시장은 무엇에 투표할까

앤트로픽 IPO 소식에 AI 기대감이 되살아나면서 26일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올랐습니다. 하지만 최근 AI 투자 거품 우려와 금리 상승으로 데이터센터·AI 인프라 기업들이 상장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흐름 속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분기 매출 증가율이 1분기 대비 2분기 50% 수준으로 둔화하면서 초기 도입 열풍 이후의 정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은 단기 손실이 막대하지만 IPO 투자자들은 2027년과 2028년의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11월의 공모가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시장의 답이 될 겁니다. 5,000억 달러 넘는 컴퓨팅 청구서를 안고 있는 회사가, 그 청구서보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가. 앤트로픽은 그 답을 94쪽의 위험 경고와 함께 내놓았습니다. 선택은 이제 투자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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