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벽두부터 전 세계 탄소 정책 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탄소국경세를 마침내 본격 가동시켰고, 한국은 배출권 거래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보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같은 시기에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배출권 거래제 적용 범위를 크게 넓히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각국이 걷는 길은 점점 갈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엇갈린 흐름을 하나씩 짚어보고, 그것이 우리 삶과 기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풀어본다.
EU 탄소국경세(CBAM), 2026년 1월 1일부로 진짜 시작됐다
먼저 용어부터 짚고 가자. 탄소국경조정제도, 흔히 'CBAM(씨뱀)'이라 부르는 이 제도는 쉽게 말해 "EU 안에서 물건을 만들 때 탄소값을 내야 한다면, EU 밖에서 수입되는 물건도 똑같이 탄소값을 내라"는 취지의 관세 비슷한 장치다. EU 역내 기업들은 이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따라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마다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만약 수입품에는 이런 부담이 없다면 EU 기업들만 손해를 보고, 기업들이 탄소 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공장을 옮기는 '탄소 누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 CBAM이다.
2026년 1월 1일, CBAM은 시범 운영 기간을 끝내고 '확정 시행(definitive period)' 단계에 들어갔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를 두고 회원국 전체의 CBAM 등록 시스템이 각국 관세 시스템, 타릭(TARIC) 관세 분류 체계, EU 관세 단일창구와 성공적으로 연동됐다고 밝혔다. 이제부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전력 등 6개 품목군을 EU로 수입하는 업체는 매년 5월 31일까지 전년도 수입량과 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탄소배출량(내재배출량이라 부른다)을 신고하고, 그만큼의 CBAM 인증서를 사서 제출해야 한다.
다만 중소 수입업체들의 행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5년 5월 EU 이사회가 개정안을 최종 승인하면서, 연간 수입 물량이 50톤 이하인 경우는 CBAM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이 조치로 전체 수입업체의 약 90%가 신고 의무에서 면제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탄소배출량 기준으로는 전체의 99% 이상이 여전히 규제 대상에 남는다고 한다. 즉 '덩치 큰' 소수의 대형 수입업체가 배출량 대부분을 책임지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다. 이 수치는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정확한 최신 수치는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부터 '진짜 돈' 내는 구조로
한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서는 몇 가지 굵직한 변화가 예고돼 있다. 우선 기업들에게 나눠주는 배출권 총량, 즉 배출 허용 한도가 이전 계획기간보다 약 17% 줄어드는 것으로 보도됐다. 배출권거래제란 정부가 기업별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배출권)를 나눠주고, 남으면 팔고 모자라면 사도록 하는 시장 기반 제도인데, 그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유상할당' 비율 확대다. 유상할당이란 기업이 배출권을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경매를 통해 돈을 내고 사야 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배출권 가격이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 머물면서 기업들이 굳이 탄소를 줄일 유인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실제로 한 보도에 따르면 배출권 거래량이 1년 새 40% 가까이 줄었고, 그 배경에는 공짜로 나눠준 배출권('무상 할당')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발전 부문을 중심으로 유상할당 비율을 현재 약 10% 수준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거래소는 여기에 더해 2026년 배출권 선물시장 상장까지 추진하며 탄소 가격의 신뢰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결국 "공짜로 받던 탄소 배출 권리에 이제부터는 실제 비용이 붙는다"는 뜻이다. 발전사, 철강사, 석유화학 기업 등 배출량이 많은 업종일수록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전기요금이나 제품 가격에 서서히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세계 최대 탄소시장을 철강·시멘트·알루미늄까지 확장
의외로 주목할 만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발전 부문을 대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2026년을 기점으로 그 적용 범위를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산업으로 넓히고 있다. 이 세 업종까지 포함되면 중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60%가 배출권거래제의 관리를 받게 된다. 특히 철강 산업 하나만 해도 중국 전체 배출량의 약 1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새로 편입되는 기업 수는 약 1,500곳에 달하고, 시장에서 관리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총 80억 톤 규모로 늘어난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아니다. 2026년까지는 기업들이 새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두고, 2027년부터 배출량 데이터 관리 수준을 높이며 점진적으로 할당량을 줄여나가는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EU의 CBAM에 선제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자국 철강·알루미늄 산업이 국제 탄소 규제에 미리 적응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정반대 길, 오바마 시대 기후 규제 뿌리째 뽑기
반면 미국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26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리 젤딘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이른바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판단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온실가스가 인간 건강과 환경에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를 인정하며 자동차·발전소 등의 온실가스 배출을 연방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돼온 핵심 장치다. 이걸 없앤다는 것은 사실상 "연방 차원에서는 더 이상 온실가스를 규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향후 정권이 바뀌어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까지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어 2026년 2월 19일에는 석탄·석유 발전소에서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 즉 수은이나 비소 같은 독성물질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고, 습지와 하천을 보호하던 청정수법(Clean Water Act)의 적용 범위도 축소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미국은 앞으로 2035년까지 추가로 18억 톤의 온실가스를 더 배출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규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각자도생 시대, 우리 기업과 소비자에게 남는 숙제
이렇게 놓고 보면 2026년의 세계 탄소정책 지형은 뚜렷하게 갈라진다. EU와 한국, 중국은 탄소에 값을 매기는 방향으로 더 촘촘하게 움직이는 반면, 미국은 정반대로 규제를 걷어내고 있다. 문제는 이 엇갈림 자체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리스크가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미 수출 비중이 큰 동시에 EU CBAM 적용 품목인 철강도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즉 한쪽에서는 탄소 비용을 물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쟁국이 그 비용 없이 값싸게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비대칭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명확하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 어느 나라가 규제를 강화하고 완화하는지 눈치를 보기보다는, 어차피 탄소 비용은 장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전제 아래 생산 공정 자체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철강 업계는 CBAM과 글로벌 고객사들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가 겹치면서 이중, 삼중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2026년은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나라'와 '탄소 규제를 되돌리는 나라'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좌표를 잡을지 시험대에 오른 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EU의 CBAM 확정 시행이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기업들에게는 탄소 감축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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