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8일, 미얀마 중부가 무너졌다. 규모 7.7의 강진이 대지를 뒤흔들었고, 몇 초 만에 수천 채의 건물이 쓰러졌다. 잔해 더미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고립된 마을, 붕괴된 교량. 뉴스 헤드라인은 처참한 현장을 연일 전했고, 전 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가?
네팔, 아이티,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유독 가난한 나라일수록 지진 피해가 더욱 참혹하다. 왜일까? 자연은 원래 공정한 법인데, 결과는 늘 불공평하다.
1. 내진설계? 그게 뭔데?
강진의 피해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건물이다. 현대 도시의 절반 이상이 콘크리트 위에 세워졌고, 그것이 얼마나 잘 버티느냐에 따라 사망자 수는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난다.
문제는, 가난한 국가일수록 내진설계가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표준 설계도 없이 지어진 주택들
- 시멘트보다 모래 비율이 높은 부실 자재
- 1970년대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은 건축법
심지어 건축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시 체계가 부실하거나 부패로 인해 실제 공사에서는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 정부는 있지만, 기능은 없다
지진은 순간이지만,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빈곤국가는 대부분 재난 대응 인프라가 미비하다.
- 실시간 경보 시스템 부재
- 구조 장비 부족 (드론, 생존자 탐지기 등)
- 현장 인력의 훈련 미흡
- 군사 정권이나 정치 혼란으로 인한 신속한 대응 불가
2025년 미얀마 지진 당시에도, 가장 큰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구조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리가 끊기고 도로가 무너져, 고립된 마을들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 상태로는, 피해를 줄일 수 없다.
3. 도시화는 빠르지만, 계획은 없다
도시는 커졌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무계획적인 팽창이었다. 농촌에서 밀려온 인구는 안전한 아파트 대신, 값싼 판잣집이나 고층 무허가 건물에 몰렸다. 이러한 구역은 지진의 진동이 집중될 경우 가장 먼저 붕괴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도시 기반시설의 복원력(resilience)**이 낮다.
한 번 무너지면, 복구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한 번 파괴되면, 그 지역은 아예 포기되기도 한다.
4. 국제 사회? 그들도 한계가 있다
물론 국제 사회는 돕는다. 구조대가 오고, 텐트와 식량이 도착한다. 하지만 그건 몇 주만의 응급 조치일 뿐, 장기적 피해를 복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제 지원조차 거부되기도 한다.
정권의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외부 언론의 출입을 막고, UN 구조대의 접근을 제한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5. '빈곤-재난 루프'에서 빠져나오려면
여기서 가장 슬픈 진실은, 지진이 가난을 심화시키고, 가난이 또 다음 지진을 더 치명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를 ‘빈곤-재난 루프’라고 부른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 지진 위험 지역에 대한 도시 재설계
- 저비용 내진 기술 보급 (예: 탄성 벽돌, 기초 고무패드)
- 재난대응 인력의 전문화 및 지역화
- 투명한 예산 집행 및 부패 감시 체계 구축
- 시민 교육 및 지역 단위 대피 시뮬레이션 의무화
가난하다고 무방비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기술은 이미 있고, 해결책도 있다. 필요한 건 의지와 실행뿐이다.
마무리하며: 지진은 불행이 아니다. 준비하지 않는 것이 불행이다.
우리는 종종 자연을 원망한다. “왜 저 나라에 또?” 하고. 하지만 재난은 차별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이 만든 구조만이 불평등할 뿐이다.
지진은 그저 ‘판이 움직이는 현상’이다. 그 판 위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짓고 있는가? 대피소인가, 무덤인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다음 강진 때도 뉴스 헤드라인은 똑같을 것이다.
단지 나라 이름만 바뀌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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