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여름, 유럽이 겪은 일은 평범한 더위가 아니었다
2026년 유럽의 여름은 달력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다. 보통 유럽의 본격적인 더위는 7월 중순 이후에 찾아오는데, 올해는 5월 하순부터 이미 극단적인 고온이 나타났다. 5월 24일 무렵 시작된 첫 번째 폭염에서는 평년보다 무려 10~15도나 높은 기온이 관측됐고, 이 시점부터 이미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5월에 사망자가 나오는 폭염은 유럽 기준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기록 경신은 한두 나라에 그치지 않았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덴마크, 스페인, 영국 등 서유럽과 중부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온 기록이 새로 쓰였다. 6월 중순 이후에는 여러 나라에서 40도를 넘는 날이 며칠씩 이어졌고, 독일 작센안할트주에서는 41.8도가 관측되며 독일 기상관측 역사상 최고기온 기록이 바뀌었다. 프랑스 기상청은 6월 23일이 1947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프랑스에서 가장 더운 날이었다고 발표했고, 스페인 안두하르에서는 6월 22일 45.1도가 기록됐다.
인명 피해 규모는 더 충격적이다. 6월 하순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1만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프랑스 국가보건청은 6월 28일 시점에 전달 대비 초과 사망자가 1,000명 규모라고 밝혔는데, 이런 수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폭염 사망자는 나라마다 집계 방식이 달라 최종 확정치는 여전히 정확한 최신 수치는 확인이 필요하다.
산불과 대피, 재난이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더위는 곧바로 불로 이어졌다. 7월 9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40도를 넘는 건조한 날씨 속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3,200헥타르 이상을 태웠고, 3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1,000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 헥타르는 가로세로 100미터 넓이를 말하는 단위로, 3,200헥타르면 여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다.
피해는 스페인 한 나라에 머물지 않았다. 7월 26일 기준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산불을 피해 대피한 누적 인원은 30만 명을 넘어섰다. 한 나라의 소방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여서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 대응 체계가 가동됐고, 이웃 나라의 소방 항공기와 인력이 국경을 넘나들며 투입됐다. 재난이 국경을 무시하고 번지는 만큼 대응도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 실증된 셈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분석도 나왔다. 유럽이 지난 수십 년간 대기오염, 특히 미세먼지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는데, 공기 중 미세먼지 입자가 햇빛을 일부 가려주는 '양산 효과'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줄자 그 가림막이 사라지면서 지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이 늘었고 폭염이 더 강해졌다는 해석이다. 대기질 개선 자체는 분명한 성과지만, 하나의 환경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드러나는 복잡성을 보여준다.
국제법정이 남긴 한 문장, 기후 대응이 '선택'에서 '의무'로
정책 지형을 바꾼 또 하나의 사건은 법정에서 나왔다. 2025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 유엔 산하 최고 사법기관으로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곳)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가의 법적 의무에 관해 권고적 의견을 내놨다. 권고적 의견이란 강제 집행력은 없지만 국제법 해석의 기준이 되는 공식 판단을 말한다.
이 판단의 핵심은 각 나라가 기후 피해를 막을 구속력 있는 법적 의무를 지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리 과정에는 96개국과 11개 국제기구가 구두 진술에 참여해 ICJ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여한 절차가 됐다. 이 사건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주도한 외교 캠페인에서 시작돼 2023년 3월 유엔총회 결의로 공식 요청됐고, 130개국 이상이 공동 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의견이 2026년에 와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각국 법원이 자국 기후소송을 판단할 때 인용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부가 감축 목표를 지키지 못하거나 목표 자체가 지나치게 느슨할 때 시민이 소송을 걸 수 있는 법적 토대가 국제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기후소송이 늘고 있으며,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앞서 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이탈, 그리고 흔들리는 국제 공조
반대 방향의 흐름도 뚜렷하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2026년 1월 27일 자로 공식 발효됐다. 미국이 파리협정을 떠난 것은 8년 사이 두 번째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국제 약속인데,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주요 배출국인 미국이 빠지면서 국제 협상의 무게중심이 크게 흔들렸다.
미국의 이탈은 단순한 상징 문제가 아니다. 개발도상국 기후 재원 분담, 감축 기술 이전, 국제 배출량 검증 체계 등 미국이 담당해온 몫이 그대로 공백으로 남는다. 그 공백을 유럽연합과 중국이 얼마나 메울 것인지가 2026년 하반기 국제 협상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다만 미국 내에서도 주정부와 기업 차원의 감축 노력은 이어지고 있어서, 연방정부의 후퇴가 곧 미국 전체의 배출 증가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1월 안탈리아 COP31, 이번엔 '적응'과 '돈'이 주인공이다
올해의 가장 큰 국제 무대는 11월에 열린다.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가 2026년 11월 9일부터 20일까지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다. COP는 매년 각국 정부 대표가 모여 기후 대응 규칙을 협상하는 자리로, 이번에는 튀르키예가 개최를 맡고 호주가 협상 진행을 함께 이끄는 독특한 구조로 정리됐다.
의제의 무게중심이 달라진 점이 핵심이다. 그동안 COP는 주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 즉 '완화'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2026년 여름 유럽과 아시아에서 실제 인명 피해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이미 벌어진 변화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라는 '적응' 문제가 전면에 나섰다. 여기에 기후 재원의 새로운 공동 정량 목표(NCQG,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 대응을 위해 매년 얼마를 낼지 정하는 목표치), 손실과 피해 기금의 실제 운영 개시가 핵심 쟁점으로 올라와 있다.
전문가들은 COP31을 두고 '논의에서 이행으로 넘어가는 시험대'라고 표현한다. 파리협정 이후 각국이 제출한 목표를 다 합쳐도 1.5도 억제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이제 관건은 새로운 선언이 아니라, 약속한 감축과 약속한 돈이 실제로 집행되는지를 어떻게 확인하고 강제할 것인가다.
플라스틱 협약과 탄소국경세, 다른 전선에서도 판이 움직인다
기후 협상 밖에서도 환경 규제의 판이 움직이고 있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202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합의 없이 끝났고, 20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속개 회의(INC-5.2)에서도 180여 개국 대표단이 예정된 일정을 하루 넘겨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쟁점은 명확하다. 석유에서 뽑아내는 원료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량 자체를 줄일 것인지 여부다. 유럽연합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 100여 개국은 생산 단계에서 줄여야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이란 같은 산유국과 미국은 생산 규제에 반대하며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에 집중하자는 입장이다. 2026년 재개 회의의 구체적 일정과 장소는 정확한 최신 정보 확인이 필요하다.
반면 확실하게 발효된 규제도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CBAM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며 만든 제품을 유럽에 수출할 때 그 배출량만큼 비용을 물리는 제도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는 배출량을 보고만 하는 전환기였는데, 이제는 실제로 돈을 내야 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다만 개정 규정을 통해 연간 누적 수입량 50톤 이하는 면제하고, 인증서 판매 시작은 2027년 2월 1일, 제출 기한은 매년 9월 30일로 완화됐으며 분기별 인증서 보유 의무도 8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낮아졌다.
2026년 여름이 남긴 질문
2026년 여름이 국제 기후정책에 남긴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지만, 이미 닥친 변화를 견디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일주일 만에 1만 명 규모의 사망자가 나온 사건은 감축 목표 몇 퍼센트를 놓고 벌이는 협상보다 훨씬 직접적인 경고였다.
동시에 국제 공조의 틀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미국이 빠지고, 플라스틱 협약은 산유국의 반대로 멈춰 서 있으며, 유럽은 탄소국경세로 사실상 무역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협력의 언어와 압박의 언어가 동시에 쓰이는 국면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비중이 크고 제조업 중심인 나라에게는 이 두 흐름이 모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11월 안탈리아에서 어떤 합의가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몇 년의 산업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 하반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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